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덕숭총림 수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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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진이 풍수이야기 (18) - 숭유 억불정책과 풍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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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를 숭상한다는 것은 불교를 잡씨로 보는 견해다. 따라서 절집은 기껏해야 양반들이나 왕족들의 원찰에 불과하다.
그것은 종속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아무 때나 헐거나 물려도 된다는 사고방식이다. 절집을 헐고 사람의 유택을 정한 우리나라 최초는 풍수 도입과정을 알수 있는 통일신라 원성왕 때 숭복사를 헐고 조성한 지금의 경주 괘릉이다. 우리 부근에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남연군 묘이다.
애초에 흥선은 국풍(국가공식풍수관료, 잡과과거출신)을 쓸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것은 그들의 임무 중 하나가 왕의 일가에 대한 풍수적 판단을 하는 것 말고도, 풍수로 왕권에 도전하는 일을 철저히 방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예로 왕자들의 태실 결정에 절대 왕이 나올 터를 배제하거나 혹은 혈처를 파괴하거나 한다.
마찬가지로 권력 싸움에서 밀려 죽게되는 회안대군의 묘를 안장하게 해놓고도 왕기 서린 터라는 이유로 엄청남 양의 숯으로 뜸을 떠 기운을 없애는 등 이중적 잣대를 적용하는 것이 바로 국풍수들이었다. 이를 잘 아는 흥선은 당연히 왕권에 꿈이 있었던 터라 국풍을 쓰지 않고 그일을 은밀하게 지사 정만인에게 맡긴다. (계속)

예산향토사연구회장
공주대학교 평생교육원 풍수지리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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