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덕숭총림 수덕사

덕숭산의 정기를 이은 천년의 아름다운 사찰
수덕사 수덕사의 보물

수덕사
바로가기

수덕사의 보물

예산지역문화재

명칭 예산 수덕사 대웅전 (禮山 修德寺 大雄殿)
종목 국보 제49호
시대 고려 충렬왕 34년(1308년)
관리자 수덕사
소유자 수덕사
지정일 1962-12-20
소재지 수덕사

수덕사는 덕숭산에 자리잡고 있는 절로, 절에 남겨진 기록에는 백제 후기 숭제법사가 처음 짓고 고려 공민왕 때 나옹이 다시 고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또 다른 기록에는 백제 법왕 1년(599)에 지명법사가 짓고 원효가 다시 고쳤다고도 전한다.
석가모니 삼불상을 모셔 놓은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은 건물로,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이다.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에 창을, 가운데에는 널문을 두었다.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 받고 있다.

명칭 수덕사노사나불괘불탱
(修德寺蘆舍那佛掛佛幀)
종목 보물 제1263호
시대 조선 현종 14년(1673)
관리자 수덕사
소유자 수덕사
지정일 1997-08-08
소재지 수덕사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 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인데, 이 괘불은 노사나불을 중심으로 하여 12대 보살, 10대 제자 등 여러 무리들이 그려진 그림이다. ‘원만보신노사나불(圓滿報身盧舍那佛)’이란 명칭이 머리광배에 기록되어 있으며 신체에 비해 두 손을 크게 강조하여 노사나불이 주존임을 뚜렷이 나타내주고 있다. 보관과 가슴에 달린 장식, 옷의 문양, 매듭 등이 화려함을 보여준다. 이 불화는 신원사 노사나불괘불탱(국보 제299호)과 같은 그림인데, 십이대보살, 십대제자, 사천왕상 등이 노사나불 주위를 에워싸고 있어 조금 더 복잡해진 모습이다. 십이대보살은 중단과 하단에 걸쳐서 배치되어 있으며, 아난과 가섭을 비롯한 십대 제자상은 자유로운 표정과 동작을 보이며 상단에 배치되어 있다.
조선 현종 14년(1673)에 제작된 이 괘불은 노사나불을 단독으로 나타낸 독특한 형식의 그림으로, 적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고 공간을 오색의 광선으로 처리하여 화려하고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신원사 노사나불괘불탱(국보 제299호)과 같은 도상으로 「원만보신노사나불」이란 존명이 기록되어 있다. 대형화면에 비로사나삼신불 중 보신불인 노사나불을 중심으로 십이대보살·십대제자·제석천과 범천·사천왕상 등이 모두 입상으로 배치된 구도로서 신원사 괘불도보다 더 많아진 협시들로 인해 복잡하다.
노사나불은 신체에 비해 두손을 크게 강조하여 노사나불이라는 존상을 강조한 것으로 보관과 가슴에 장식된 영락과 두팔에 걸쳐진 천의와 하의의 문양, 매듭 등의 장식에서 화려함을 보여준다. 십이대보살은 문수·보현보살과 일광·월광보살, 지장·관음보살 등이 중단과 하단에 걸처서 배치되어 있는데 지장과 관음보살은 적색의 두광, 일광과 월광보살은 흑갑사의 두광을 지고 있어 다른 보살의 녹색 두광과 구별짓고 있다. 아난과 가섭을 비롯한 십대제자상이 자유로운 표정과 동작을 보이고 있는 상단에는 본존 두광 위의 불과 보살, 여섯 구의 십방제불(十方諸佛) 공양물을 들고 있는 비천상등이 배치되어 있어 신원사 괘불도보다 훨씬 복잡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이 괘불탱은 노사나불을 단독으로 나타낸 독특한 도상이며 적색과 녹색을 주조색으로 사용하고 공간을 오색의 광선문으로 처리하여 화려하고 환상적인 세계로 이끌고 있다. 화기에는 괘불도 제작에 사용된 탱·포·바탕시주와 주황·황금 등 안료시주, 식염의 공양시주 등의 시주자 명단이 명기되어 있고, 화사는 응렬·학전·석능 등 신원사 괘불도와 같다.

명칭 예산 수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禮山 修德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및 腹藏遺物)
종목 보물 제1381호
시대 조선 인조 17년(1639)
관리자 수덕사
소유자 수덕사
지정일 2003-11-14
소재지 수덕사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에 모셔져 있는 목조 삼불좌상 및 복장유물과 연화대좌, 수미단 등이다.
삼불좌상은 수덕사의 중흥조(中興祖)인 만공(滿空)선사가 전북 남원에 있는 만행산 ‘귀정사(歸淨寺)’로부터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약사불, 왼쪽에는 아미타불이 자리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은 주존으로서 굽어보는 듯한 자세에 당당한 어깨와 넓은 무릎을 하여 안정되어 보인다. 육계의 구분이 불분명한 머리에는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표현되어 있으며, 네모꼴의 각진 얼굴에는 근엄한 듯 부드러운 미소가 엿보인다. 귀는 길어서 어깨까지 늘어졌고, 가늘어진 목에는 세 개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옷은 양어깨를 다 덮는 통견(通肩) 형식으로 오른팔이 드러나게 함으로써 17세기 불상들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손 모양은 왼손을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내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약사불과 아미타불 또한 머리 모양, 얼굴 형태와 귀·눈·입·코의 표현, 양 손과 옷주름선의 사실적 묘사 등이 본존불과 동일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약사불이 왼손을 위로 하고 오른손을 아래로 하여 엄지와 중지를 맞댄 채 오른손 바닥에 약그릇을 들고 있는데 비해, 아미타불은 약사불과 손의 좌우가 바뀌고 약그릇이 보이지 않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조성기’에 의하여 조선 인조 17년(1639)에 수연(守衍)비구를 비롯한 7명의 화원(畵員)들이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석가모니불이 앉아 있는 대좌형 수미단(須彌壇)은 고려시대 심원사(心源寺) 대웅전 불탁(佛卓)과 그 장엄수법이 동일한 것으로, 금강저(金剛杵)·삽화병(揷花甁)·목단(牧丹)·운파(雲波) 등 안상(眼象) 조각에서 고려시대 불탁의 특징을 살필 수 있다. 이 수미단의 기초는 좌우 일반형 탁자와 달리 대웅전 마루 저면 약 30㎝ 지점의 초기 평면과 동일하며, 그곳에서부터 육각의 저대석이 탁자를 지탱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성시기는 대웅전 건립연대(1308)와 같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수미단은 유일하게 대좌형 수미단을 육각과 장방형으로 각기 구성하고 있어 공예사적으로 귀중한 자료가 된다.
불상 안에서 나온 복장유물은 전적류·후령통(喉鈴筒) 및 오색실·복식 등이 있다. 전적류는 발원문을 비롯하여 『묘법연화경』·『대방광원각수다라료의경』·『불설관세음경』 등의 경전과 진언문 및 다라니로서 17세기 초반에 간행된 목판본이 주를 이루고 있다. 후령통 안에는 각각 오방(五方)을 상징하는 5색의 사각형 직물 안에 원형, 금강저, 삼족(三足)과 육족(六足)의 번(幡)을 의미하는 형태의 직물이 들어 있었다. 오색실은 동·서·남·북·중앙을 상징하는 청색·흰색·홍색·자주색·황색의 실이다. 복식은 조선 중기 포(袍)에서 두루마기의 형태를 따르고 있으며 모든 직물의 색상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서 조선 중기 직물사 및 염색에 관한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