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덕숭총림 수덕사

덕숭산의 정기를 이은 천년의 아름다운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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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초 경선 스님

벽초 경선 스님
초대 주지

벽초 경선(碧超 鏡禪, 1899 ~1986)스님은 수덕사를 중창하여 오늘날의 대사찰로 만들었다.
1배 이상의 절을 사양하면서, 말로써 가르치지 않고 행(行)으로써 제자들을 가르쳐 보현보살의 화신이라 칭송받았다. 성은 마씨(馬氏)이고, 법호는 벽초(碧超), 법명은 경선(鏡禪)이시다. 아버니는 순호(淳浩)이시고, 충청남도 청양에서 출생했다. 1908년 13세 때 탁발 나온 만공 선사에게 감화를 받아 아버지와 함께 수덕사로 출가, 만공 선사께 삭발 수계 후 만공 선사를 따라 금강산 유점사와 오대산・지리산 등의 명산을 다니면서 수도했다.
그 뒤 만공 선사의 법맥을 이어 1940년 30여 년간 수덕사 주지를 지내며 수행자들의 공부를 돌보기 위해서 궂은 일을 도맡아 했고, 수덕사에서 정혜사에 이르는 계단을 천 팔십 돌 계단을 쌓았다.
1962년 9월 수덕사가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로 승격된 후 초대, 2대, 3대, 6대, 8대 주지를 역임했다. 그리고 1985년에는 덕숭총림 2대 방장으로 대한불교 중앙종회에서 추대되었다.
스님은 잠시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제자들에게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 모두 공부라 했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을 알 것을 강조했던 스님은 평생 법상(法床)에 올라 법문을 하지 않았다.
주지 취임 이후 선농일여(禪農一如) 사상의 일환으로 사중의 재답(財沓)을 조성하고, 수덕사 경내 입구에 일주문을 조성하여 가람을 면모를 갖추었다. 또한 정혜사의 축대를 정비하고, 수덕사에서 , 비구니 선원인 견성암을 정혜사 동쪽 언덕에서 현재의 자이로 이건하는 등 수덕사를 선가의 종찰로서 위상을 확립하고자 했다.
오늘날까지도 스님의 선농일여사상(禪農一如思想)은 세간의 큰 귀감이 되고 있다. 1986년 음력 3월 28일 장례를 간단히 치르라는 당부를 남기고 수덕사에서 세수 87세, 법랍 74세로 입적했다.

원담 진성 스님

원담 진성(圓潭 眞性, 1926 ~ 2008) 스님은 경허·만공 양대 선사의 선풍을 계승하여 현대의 선농일여의 가풍을 새롭게 진작한 선지식이다.
스님의 속명은 몽술(夢述), 법명은 진성(眞性), 법호는 원담((圓潭)이시다. 1926년 전북 옥구에서 부친 김낙관(金洛觀)과 모친 나채봉(羅采鳳)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나씨 부인의 꿈에 신승(神僧)이 이름을 지어주었다 하여 몽술(夢述)이라 하였는데, 울지 않던 아이가 화주하러 온 스님의 목탁과 염불소리를 듣고 그때부터 울음을 터트리니 심상치 않았음을 엿볼 수 있었다. 12세 되던 1937년 이모님을 따라 수덕사를 방문하게 된 원담 스님은 여법(如法)하게 정진하는 스님들의 청정한 모습에 한희심이 생겨 출가를 결심하고 천장사에서 행자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전월사(轉月舍)에서 만공 선사를 시봉하며 수행정진하다 그의 나이 16세인 1941년 벽초 스님을 은사(恩師)로 만공 선사를 계사(戒師)로 하여 사미계를 받았다. 만공 선사로부터 전법게(傳法偈)를 받은 후, 1971년부터 수덕사의 교구본사로서 사격을 유지하기 위해 대내, 대외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먼저 명부전(冥府殿)과 범종각, 법고각을 신축하고 사물(四物)을 조성 봉안했다.
특히 범종(梵鐘)은 1974년 4월 9일 우리나라에서는 해방 후 최초로 조성된 것이다. 이 범종불사는 수덕사 경내에 주조공장을 설립하여 사부대중의 서원과 정성을 모아 주조했다는 큰 의미가 있다. 근대 선맥의 상징이신 경허 스님의 사상을 고취하고자 경허 스님의 부도탑을 조성하여 밖으로 큰 스님들의 선풍을 널리 알리고 안으로 그 선지(禪旨)를 면면히 계승 하에 하는 발판을 만들었다. 수덕사를 현재의 덕숭총림으로 지정하여 가람수호와 산중의 화합에 매진했으며, 납자의 탁마(琢磨)에는 시처를 가리지 않았으니 근대 불조의 혜맥을 잇는 선지식이다. 또한 이러한 선지로 쓰신 일필(逸筆)은 당대 최고의 선필(禪筆)로 유명하다.
스님은 4대, 5대, 7대 수덕사 주지를 역임했다.

혜우 스님

혜우(慧雨, 1938 ~ )스님은 1964년 수덕사에 입산하여 벽초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67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한 스님은 같은 해 수덕사 승가대학을 수료한 후 전국의 이름있는 명찰을 찾아다니며 수선안거하다가 1979년 10월 수덕사 주지로 취임하여 종단의 법난 당시 은사 벽초 스님을 모시고 가람 수호와 산중화합에 진력했다. 이후 스님은 일체의 공직을 사양하고 수선안거에 전념하고 있다.

설정 송원 스님

설정 송원(雪靖 松原, 1944 ~ ) 스님은 1944년 충남 예산군 덕산면 대동리에서 태어나서 14세에 수덕사에 입산하여 1955년 원담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61년 범어사에서 동신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78년 12월 11대(12대, 13대 14대) 수덕사 주지로 취임한 스님은 잃었던 사중재답을 회복하고 총림을 설립하여, 본사의 위상을 드높이는 등 1970년대 후반 수덕사가 문중의 어려움을 겪을 때 주지로 부임하여 덕숭문중의 안정을 이끌어 내고 총림의 기반을 공고히 했다.
93년 종단이 혼란에 직면했을 때 개혁회의의 법제위원장을 맡아 종헌종법을 개정하고, 94년 중앙종회의장에 선출되어 98년까지 소임을 보았다.
이후 일체의 공직을 사양하고 총림의 수좌로 정진하고 또한 제방선원에 수선안거하며 승려 본연의 본분사에 열중했다.
스님은 이(理)와 사(事)를 두루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2009년에 수덕사 방장에 취임했다.

법성 우송 스님

법성 우송(法城 愚松, 1943 ~ ) 스님은 15세 되던 해 수덕사에 입산하여 1959년 원담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63년 범어사에서 혜수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한 스님은 65년 용주사에서 대교과를 수료한 후 9년간 제방 선원에서 수선 안거하며 용맹정진하다가 73년 8월 정암사 주지로 취임하여 88년까지 15년간 계속 정암사에 머무르면서 수행자들의 공부를 돌보는 한편 86년에 제8대 중앙종회의원으로 선출되어 덕숭총림의 대변 역할을 다해왔다.
이후 스님은 88년 12월 제15대 수덕사 주지로 취임하여 전부터 계속 공사 중이던 황하정루 신축불사를 마무리하여 회향했으며, 사하촌 집단시설지구 개발사업에 주력하는 등 사찰정화불사에 진력했다.
스님은 92년 4월 정혜사 능인선원 선원장으로 추대되어 후학들을 지도하는 한편 덕숭총림의 유나로 산중의 화합과 안정을 도모하는데 진력하고, 현재는 수좌로 수선안거하고 있다.

인곡 법장 스님

인곡 법장(仁谷 法長, ~ 2005) 스님은 19세 되던 해 1960년 수덕사에 입산하여 원담(圓潭) 스님을 은사로 득도, 수덕사에서 기도, 용맹정진 후 1973년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수료하고 본사에 머무르면서 은사 스님을 보필하여 종무(재무, 총무)를 돌보아왔으며, 1978년 통도사 극락암 선원에서 안거 정진한 후, 1980년 본격적으로 중앙종회의원 5선으로써 법규위원, 호계재심위원을 비롯한 총무원 사회・재무부장, 동국대학교 감사 ・이사 등 종단의 주요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1992년 4월 16대(17,18대 역임) 수덕사 주지로 취임한 스님은 경허・만공 양대 선사께서 남기신 법훈과 위업을 받들어 선지종찰(禪之宗刹)의 제 모습을 되찾기 위해 퇴락한 가람을 중창하여 성역화하는 일이 급선무임을 통감하고 방장 원담스님의 뜻을 받들어 종합적인 정화불사계획을 수립하여 1993년부터 10년간 지속적으로 불사를 전개하여 전통의 가람배치와 원형보전 그리고 실용적 가치를 겸한 안목으로 쇄신하는데 주력했다.
또한 스님은 그동안 사하촌 개발로 인한 13건의 송사사건을 해결하고 5만9천여평의 분쟁토지를 완전 환수하는 등 난제를 해결하는 한편, 선의 종찰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1996년에 승가대학을 개설하고 성보박물관 건립과 더불어 서울에 한국불교선학연구원(무불선원)을 설립하여 경허・만공 스님의 선사상 연구를 통해 덕숭총림의 진면목을 국내외에 널리 선양하는데 진력했다.
한편 스님은 일반 사회분야에서도 사답법인 생명나눔실천회를 설립하여 장기기증운동을 펼치는가 하면, 교도소 재소자를 위한 교화, 전국운전불자교양, 경승(警僧)활동, 유권자운동연합 공동대표, 환경운동 자문위원 등 사회복지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2001년 6월 20일 교정대상을 받는가 하면 2001년 12월 27일에는 정부에서 국민훈장(목련장)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스님은 2003년 2월 제31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에 당선된 후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회장, 한일불교문화교류협의회 회장, 중앙승가대 이사장, 대한불교청년회 총재를 역임하면서 한국불교를 반석위에 올려 놓는데 열과 성을 다했다.
다종교 국가인 한국사회에서 2004년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제7대 공동대표 의장을 지내면서 종교 간에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하고 화합하도록 종교인들이 스스로 주민들의 모범이 되도록 이끌었다.
스님은 국가적으로도 남북 분단이라는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상처를 종교인들이 앞장서서 치유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불교 차원에서 북과의 나눔을 비롯해 6·15 민족대회 등 직접 평양을 방문하는 등 민간차원에서 남북의 화합을 실천했다. 스님은 이라크에 파병된 장병들을 격려하는 등 지구촌의 아픔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서 분쟁과 갈등을 해결하여 화해와 평화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또한 한국사회의 어두운 곳에는 항상 함께 하고자 했으며 사회복지를 비롯한 각종 사회 발전을 위한 일에 솔선수범하는 실천가였다.
생명나눔실천본부 총재이기도 했던 스님은 2005년 9월 입적 후 법구를 내놓아 시신 기증에 대한 약속을 지키는 등 언제나 중생들과 함께 하는 길을 걸었다. 그리하여 2005년 9월 12일 정부는 스님이 국가와 사회, 그리고 민족을 위해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특히 세계평화와 한반도 평하를 위해 기여하신 업적을 기리기 위해 국민훈장 무궁화장(1등급)을 추서했다.
2005년 9월15일 각 종단의 원로대덕스님들과 이웃나라 불교대표, 이웃종교 지도자, 시민사회단체, 정관계인사등 3만여 사부대중이 운집하여 종단장으로 봉행되었다.

운경 법정 스님(1944 ~ ) 제19대 주지(2003 ~ 2007) 역임
템플스테이 전용관(심연당) 건립, 관음전 복원
수덕여관 매수
옹산 법광 스님(1945 ~ ) 제20대 주지(2007 ~ 2011) 역임
대웅전 건립 700주년 행사
수덕여관 개축 및 선미술관 건립
염불원, 만공기념관 건립
지운 스님(1956 ~ ) 제21대 주지(2011~2015.3)역임
템플스테이 운영관(완월암, 감로당) 건립
정보통신환경개선사업(미디어보드 3대 설치)
주차 및 입장료 전산화
노인요양원 건립
정묵스님(1962~ ) 제22대, 23대 주지 역임

주지 재임기간 :
2015년 3월 20일 ~ 2023년 3월 27일

불사 :
2015년 소림초당 보수
2016년 펌프장 가림시설
2017년 명선당 건립
2018년 경비관제소 건립
2019년 후원증축공사
2020년 유물전시관 건립
2021년 산하동천 개축
2022년 소방시설 증설, 백운당 개축, 황하정루 시설개선 사전설계 및 사업비 확보
15일 오전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열린 법장스님 영결식중 하늘에 해무리와 무지개가 사부대중의 눈길을 끌었다.